1. 미국의 디지털 상속 법제도 – RUFADAA와 플랫폼 중심의 구조
미국은 디지털 유산 관리에서 비교적 빠르게 제도적 정비를 시작한 국가 중 하나다. 특히 **2015년 미국통일법위원회(UCLA)**가 제안한 **‘RUFADAA’(Revised Uniform Fiduciary Access to Digital Assets Act, 개정 통합 디지털 자산 접근법)**는 디지털 자산 상속의 핵심 법안으로 널리 채택되고 있다.
이 법은 디지털 자산에 대한 유족 또는 법정 대리인의 접근 권한을 명확히 규정하며, 사망자의 의사가 문서화되어 있을 경우 플랫폼 사업자는 계정 정보와 데이터를 정당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근거를 제시한다.
RUFADAA의 핵심은 ‘사망자의 사전 동의 여부’와 ‘서비스 제공자의 정책 존중’이라는 두 원칙이다. 사용자가 생전에 유언장이나 해당 플랫폼의 사후 처리 기능(예: 구글 Inactive Account Manager)을 통해 유산 지정 의사를 명시했다면, 유족은 법적 절차를 통해 계정과 데이터를 이관받을 수 있다. 그러나 사용자의 명확한 의사 표현이 없을 경우, 유족의 요청만으로는 대부분의 플랫폼이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구조는 개인 프라이버시 보호와 상속인의 권리 간 균형을 지향하며, 현재까지 미국 50개 주 중 약 46개 주가 RUFADAA를 채택하거나 유사 법안을 도입하고 있다. 다만 각 주의 구체적 시행 방식은 상이하며, 연방법으로 통합되어 있지는 않다. 미국의 제도는 사용자의 사전 설정을 전제로 하여, 플랫폼과 유족 사이의 명확한 법적 다리를 놓은 체계적인 모델로 평가된다.
2. 유럽의 디지털 유산 접근 – GDPR 기반의 개인정보 우선 원칙
유럽연합(EU)은 개인정보 보호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게 규정한 **GDPR(General Data Protection Regulation)**을 기반으로 디지털 유산 문제를 다룬다. GDPR은 생존자뿐 아니라 사망자의 데이터 보호도 일정 수준으로 보장하고 있으며, 프라이버시의 존중을 최우선 가치로 둔다.
이로 인해 사망자의 명시적 동의가 없는 한, 유족이 데이터 접근을 요구해도 서비스 제공자가 이를 제공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는 사용자의 유언장이나 법원 명령 없이 페이스북 계정에 접근할 수 없다는 판례가 있었으며, 이는 고인의 프라이버시 보호가 사후에도 계속된다는 유럽의 입장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는 새로운 법 해석이 이뤄지고 있다. 2018년 독일 연방대법원은 한 자녀가 사망한 부모의 페이스북 계정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하며, 이를 상속법적 권리로 본 최초의 판결을 내렸다. 이는 “디지털 자산도 물리적 유산처럼 상속 가능하다”는 전향적 판단이었고, 이후 유럽 내 여러 국가에서 유사한 판례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의 디지털 유산 법제도는 전체적으로 개인정보 보호 중심이지만, 상속권과의 충돌을 인정하고, 점진적으로 법적 해석을 확장해가는 추세다. GDPR이라는 강력한 틀 속에서, 유언장·계약서 등 사전적 절차가 핵심 도구로 작용하는 구조다.
3. 일본의 디지털 자산 대응 – 유언장 중심의 현실적 대응과 한계
일본은 고령화 속도가 빠르고, 디지털 기기 활용률이 높은 국가이지만, 디지털 유산 관련 명확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기존 민법에 따라 디지털 자산도 '재산적 가치'가 있는 한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을 중심으로 실무가 운영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디지털 유언장’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으며, 민간에서 관련 서비스도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은 디지털 유산 설계에 있어 **‘디지털 정리 생전 실천 운동(デジタル終活)’**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개인이 생전에 자신의 SNS, 사진, 문서, 암호화폐 등을 목록화하고 암호화해 가족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정리하는 문화가 자리 잡아가고 있다. 민간에서는 이를 도와주는 디지털 금고 서비스(예: エンディングノート 앱, デジタル遺品整理士 인증 등)가 등장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법적 보호 장치가 미비하다는 점이다. 플랫폼에 따라서는 사망자의 데이터에 대해 유족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으며, 명확한 법제도가 없기 때문에 기업별 정책에 따라 대응이 갈린다.
이러한 상황에서 변호사들은 “디지털 유산도 물리적 유산처럼 유언장에 명시하고, 가족과 정보를 공유해두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응”이라며, 공증이나 녹취, 생전 저장 서비스와의 병행 사용을 권장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는 법률보다 문화적 실천이 앞서는 구조이며, 디지털 유산 정리에 있어 사회적 인식과 민간 서비스의 발달이 제도적 공백을 일부 보완하고 있는 모델로 이해할 수 있다.
4. 한국의 제도 현황과 과제 – 공백 상태의 법률과 인식 부족
한국은 디지털 자산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유산에 대한 법적 정의나 처리 기준은 아직 명확하게 마련되지 않았다. 현행 민법은 디지털 자산을 명시적으로 규정하지 않으며, 디지털 유산에 대한 상속 관련 사례도 극히 제한적이다.
그 결과 사망자의 계정이나 데이터에 대한 유족의 접근은 서비스 제공자의 약관, 또는 기업의 내부 지침에 의존하는 것이 현실이다.
예를 들어 카카오, 네이버 등 국내 주요 플랫폼은 사망자의 계정 삭제나 일시 정지는 지원하지만, 계정 열람, 콘텐츠 전달, 수익 이관 등에 대해서는 소극적이다. 이는 개인정보 보호법의 해석 때문이며, 고인의 명시적 동의 없이 제3자에게 정보를 제공할 경우 법적 분쟁 소지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디지털 유산 관련 가장 큰 문제는 법률적 공백과 사회적 인식 부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을 명시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생전에 사후 계정 설정 기능을 활용하는 비율도 매우 낮다.
이에 따라 법률 전문가들은 국가 차원의 가이드라인 마련, 디지털 유산 상속 항목의 민법 반영, 플랫폼 표준화 대응 필요성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현재 일부 스타트업(예: Definery 등)과 공공기관이 관련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지만, 제도적 뒷받침 없이는 실효성을 갖기 어렵다. 한국은 기술 발전 수준에 비해 법과 문화가 뒤처진 구조이며, 디지털 유산의 법제화를 국가적 과제로 인식해야 할 시점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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