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속법의 기본 틀 – 물리적 재산 중심의 민법 체계
현행 한국 민법은 상속에 대해 매우 명확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재산의 귀속, 유언의 효력, 상속인의 범위, 대습상속 등은 수십 년간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왔으며, 부동산·현금·유가증권 등 물리적 또는 법률적으로 명시 가능한 자산을 중심으로 상속 구조가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디지털 시대가 도래하면서, '형태가 없는 재산'의 법적 지위에 대한 해석이 불완전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예를 들어, SNS 계정, 클라우드에 저장된 사진, 이메일 계정, 온라인 구독 서비스, 암호화폐 지갑 등은 일상생활 속 재산적 가치와 감정적 의미를 지닌 디지털 자산이지만, 민법상 이들을 명시적으로 규정한 조항은 존재하지 않는다.
민법 제1005조는 "피상속인의 일신에 전속한 권리는 상속되지 아니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이 조항이 디지털 자산의 상속에 혼란을 불러일으키는 핵심 원인 중 하나가 되고 있다.
디지털 자산이 ‘일신 전속적 권리’인지, ‘재산권’인지에 따라 상속 여부가 결정되는데, 이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이로 인해 많은 법률가와 유족은 기존 민법의 틀로는 디지털 자산을 포괄적이고 실효성 있게 해석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직면하고 있으며, 이는 법적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2. 민법 해석의 현실적 한계 – 소유권과 이용권의 경계 혼란
디지털 자산의 법적 해석에서 가장 큰 걸림돌은 소유권이 아닌 ‘이용권’에 기반한 서비스 구조다. 대부분의 디지털 플랫폼은 이용약관을 통해 계정, 콘텐츠, 데이터에 대해 **‘소유권은 회사에 있고, 사용자는 일정 조건 하에 이용할 권한만 가진다’**는 구조를 취한다.
즉, 사용자가 많은 돈을 들여 온라인 게임 아이템을 구매하거나, 수년간 블로그에 글을 썼더라도, 해당 자산은 법적으로 ‘소유’한 것이 아니며,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일 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것이다.
이러한 구조는 민법상 상속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불러일으킨다. 민법은 ‘재산적 가치가 있는 물건’을 상속 대상으로 본다. 그런데 계정이나 콘텐츠가 플랫폼 회사 소유일 경우, 상속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다.
예컨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애플 등은 사망자의 계정에 대해 ‘계정은 삭제 대상일 뿐 상속 대상이 아니다’는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이는 민법 해석상 상속의 한계를 그대로 반영한 결과다.
결과적으로 유족은 실질적으로 소중한 자산을 상속받고 싶어도, 법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접근이 제한되거나 무시되는 상황에 처한다. 이는 상속법 해석이 디지털 자산의 기술적 구조, 플랫폼 정책, 사용자의 기대를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현행 법체계는 디지털 자산을 상속의 대상으로 인정할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으며, 법률 해석만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한계가 존재한다.
3. 감정적·재산적 가치의 복합성 – 디지털 자산의 상속 필요성
디지털 자산은 물리적인 자산과는 다르지만, 그 가치는 오히려 더 다양하고 깊은 층위를 지닌다. 대표적으로 고인이 남긴 사진, 영상, 이메일, 메시지는 유족에게 감정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이는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고인과의 마지막 연결 고리로 작용하며, 추모와 치유의 매개체가 되기도 한다.
또한 일부 디지털 자산은 명백한 재산적 가치를 지닌다. 유튜브 채널 수익, NFT 아트워크, 암호화폐, 블로그 광고 수익, 유료 콘텐츠 판매 계정 등은 매달 수익을 발생시키는 자산임에도 불구하고, 플랫폼에서 해당 수익이나 계정을 유족에게 이전해주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다.
이러한 상황은 민법의 해석이 현실의 디지털 경제 구조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음을 드러내며, 유산의 실효성을 훼손하고, 가족 간 법적 갈등을 유발하는 요인이 된다.
더 큰 문제는 디지털 자산이 사망과 동시에 플랫폼에 의해 삭제되거나, 계정 접근이 막히는 경우가 많아 사실상 유산으로서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고인의 유산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것은 법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중요한 행위임에도 불구하고, 현재 민법은 이를 보호해주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상속법은 디지털 자산의 ‘감정적 의미’와 ‘경제적 실효성’을 모두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하며, 새로운 자산 형태에 대한 명시적 조항 마련이 시급하다.
4. 대안과 개선 방향 – 디지털 유산을 위한 입법 및 실무 전략
디지털 자산 상속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민법 해석을 넘어 입법적 개선과 실무 가이드라인 마련이 병행되어야 한다. 법률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은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 민법 내 디지털 자산 정의 신설: 디지털 자산을 상속 가능한 권리의 한 유형으로 명시하고, 암호화폐, 콘텐츠 계정, 클라우드 파일, 온라인 수익 등 유형별 자산 분류를 반영해야 한다.
- 상속인 인증 절차의 표준화: 사망진단서, 가족관계증명서, 유언장 등을 제출해 플랫폼별로 상속인이 합법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플랫폼 간 인증 연동 체계 마련이 필요하다.
- 사전 설정 기능 활성화: 구글, 애플 등의 비활성 계정 관리자 기능처럼, 사용자가 생전에 디지털 유산을 어떻게 처리할지 설정할 수 있는 표준 기능을 모든 플랫폼에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 공공 가이드라인 제정: 개인정보보호위원회, 법무부, 과기정통부 등 정부기관 주도의 디지털 유산 처리 지침 및 표준 가이드라인이 마련돼야 한다. 이는 상속인, 공무원, 기업, 법률가 모두가 참고할 수 있는 기준이 된다.
또한 사용자는 디지털 유산 목록 작성, 디지털 유언장 정리, 암호화 정보 백업 등 실질적인 사전 준비를 통해 법적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 변호사 또는 상속 전문가와 상담해 유언장에 디지털 자산 항목을 포함하고, 가족 간 정보를 공유하는 것도 중요하다.
디지털 자산 상속 문제는 이제 더 이상 일부 전문가의 문제가 아닌, 모든 개인과 가족이 직면하게 될 공통의 과제다. 이를 위해 상속법은 변화해야 하며, 디지털 시대에 걸맞은 법률과 문화적 인식 전환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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