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플랫폼 이용약관의 구조 – 소유권이 아닌 ‘이용권’ 기반
디지털 플랫폼 서비스는 사용자가 계정을 생성하고 콘텐츠를 업로드하거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도록 하지만, 그 본질은 **‘소유’가 아니라 ‘이용’**이라는 점에서 시작된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네이버, 카카오 등 주요 글로벌 및 국내 플랫폼의 약관을 살펴보면, 공통적으로 **"사용자에게는 해당 플랫폼을 일정 조건 하에 이용할 수 있는 권한만 부여된다"**는 조항이 존재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이용자가 플랫폼을 통해 사진을 저장하고, 영상을 업로드하고, 메시지를 주고받고, 온라인 자산을 보유하더라도 **그 콘텐츠와 계정 자체는 ‘플랫폼의 시스템 내에 존재하는 것일 뿐’**이라는 법적 해석이 가능해진다. 다시 말해, 사용자가 플랫폼에 저장한 디지털 자산은 형식적으로는 ‘내 것’ 같지만, 약관상으로는 사용권에 불과하여 사후에 이를 상속하거나 이전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플랫폼은 약관을 통해 “계정은 개인 고유의 것이며, 제3자에게 양도하거나 상속할 수 없다”는 내용을 명시하고 있다. 이는 단순히 법률적 회피를 위한 조치가 아니라, 개인정보 보호 및 서비스 일관성 유지를 위한 수단으로 설명된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망자의 유족이 그 계정에 접근하거나 데이터를 확보하려는 모든 시도에 대해 서비스 약관이 법률보다 우선하는 셈이 된다.
이용약관의 이러한 특성은 생전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사망 이후 상속 단계에서 심각한 법적 공백을 초래하게 된다. 계정 접근 권한은 상속 대상에서 제외되며, 유족은 고인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2. 민법상 상속권과의 충돌 – 누구의 권리가 우선하는가?
한국 민법은 상속에 대해 비교적 명확한 원칙을 제공한다. 민법 제1005조에 따르면, 피상속인의 모든 재산상 권리와 의무는 상속인에게 승계되며, 이는 금전적 가치가 있는 자산뿐만 아니라 **‘상속 가능한 일체의 권리’**를 포함한다.
문제는 플랫폼 계정과 그 안에 있는 디지털 자산이 과연 상속 대상에 해당하는 ‘재산적 권리’로 인정될 수 있는가에 있다.
이론적으로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 유튜브 수익, 디지털 사진, 온라인 소설, 블로그 콘텐츠 등은 실질적인 재산적 가치 혹은 감정적 가치를 가진 자산으로서 상속 대상이 될 수 있다. 특히 암호화폐, NFT, 유튜브 채널 수익 같은 자산은 상속세 부과 기준에도 포함될 정도로 법적으로도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서비스 제공자의 이용약관은 이러한 민법상 상속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계정은 사망과 동시에 폐쇄되며, 제3자는 접근할 수 없다”, “사망자의 콘텐츠에 대한 접근은 제한된다” 등의 조항은 실질적으로 민법상의 상속을 무력화시키는 구조다.
따라서 플랫폼 약관이 민법의 상속 규정을 우선적으로 제약하게 되면서, 법률적으로는 상속 가능하지만, 실무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충돌은 결국, 상속법과 플랫폼 약관 중 어느 쪽의 효력이 우선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현재로서는 대부분의 사망자 계정 관련 민원이나 분쟁에서, 플랫폼이 약관을 근거로 계정 접근을 제한하고 있고, 법원이 이를 제재하거나 강제하는 사례는 극히 드물다.
즉, 법적 권리가 실질적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는 비대칭 구조가 존재하는 셈이다.
3. 실제 분쟁 사례와 정책적 공백 – 유족의 권리는 어디까지 인정되는가?
실제 이러한 구조적 충돌은 유족과 플랫폼 간의 갈등으로 표면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자녀를 잃은 부모가 사망자의 SNS 계정이나 클라우드 사진을 열람하려고 했지만, 플랫폼 측이 ‘개인정보 보호’를 이유로 이를 거부한 사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빈번하게 발생한다.
대표적인 예로, 독일에서는 부모가 사망한 자녀의 페이스북 계정 접근을 요구했으나 페이스북이 이를 거절하면서 법정 소송까지 이어졌다. 독일 연방대법원은 2018년, 해당 계정은 상속 대상이며 부모가 접근할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지만, 여전히 플랫폼 측에서는 이용자 사망에 대한 ‘내부 처리 기준’에 따라 대응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유사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지만, 상속법이 디지털 자산을 명확히 규정하지 않고 있고, 개인정보보호법의 사후 적용 여부가 불분명해 유족의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지 못하고 있다.
법적 상속이 가능하다고 해도, 플랫폼의 운영 정책과 기술적 장벽 앞에서는 무력화되며, 이용자의 생전 사전 설정이 없을 경우 계정은 폐쇄되거나 자동 삭제되기도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법률 제도와 기업 약관 간의 간극이 유족의 정당한 상속권을 침해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특히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정서적 콘텐츠(예: 음성 메시지, 사진, 대화 기록)는 소중한 기억이기도 하지만 사망과 동시에 소멸하는 디지털 유실 자산이 되기도 한다.
정책적으로도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구체적 기준이나 법적 통일안은 마련되어 있지 않으며, 이는 시민의 권리와 플랫폼의 약관 간 조율 실패를 여실히 드러낸다.
4. 제도 개선을 위한 대안 – 상속 친화적 플랫폼과 입법 정비
플랫폼 약관과 상속법의 충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입법적 정비와 플랫폼의 자율적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 먼저, 입법 측면에서는 민법에 ‘디지털 자산의 정의 및 상속 범위’를 명문화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 ‘RUFADAA(디지털 자산 접근법)’를 통해 사용자 생전 의사와 상속인 권리의 범위를 조율하고 있으며, 유럽 일부 국가는 GDPR 하에 사망자 데이터 처리 가이드라인을 운영 중이다.
한국도 이에 대응하여,
- 디지털 자산의 상속 여부 및 범주
- 사망자 계정에 대한 접근 권한 요건
- 서비스 제공자의 협조 의무
- 고인의 생전 의사 확인 방식(디지털 유언장 등)
등을 포함하는 디지털 유산 관련 특별법 또는 민법 개정안이 논의되어야 한다. 동시에, 개인정보보호법상 사망자의 정보 보호 범위와 한계를 명확히 규정함으로써, 유족의 권리와 고인의 프라이버시 사이에 균형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플랫폼 차원에서도 상속 친화적 시스템을 도입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구글의 Inactive Account Manager, 애플의 Digital Legacy, 페이스북의 계정 관리자 기능처럼, 사용자 생전 설정으로 사후 접근권을 미리 지정하는 기능은 법적 공백을 메우는 실질적인 방안이 된다.
정부는 이러한 기능을 모든 주요 플랫폼에서 표준 기능으로 의무화하거나 가이드라인화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플랫폼 이용약관은 이용자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장치여야 하며, 상속법의 취지를 훼손하지 않는 방향으로 정비되어야 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의 권리와 기억은 법과 제도의 보호 속에서 존중받아야 할 유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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