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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관리

디지털 유산과 개인정보 보호법의 충돌 –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디지털 유산과 개인정보 보호법의 충돌 –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

 

 

1. 디지털 유산과 개인정보 보호법의 상충 – 새로운 갈등의 시작

현대 사회에서 **디지털 유산(Digital Legacy)**은 단순한 온라인 흔적을 넘어 중요한 자산이자 기록으로 인식되고 있다. 개인이 남긴 SNS 계정, 이메일, 클라우드 저장소, 온라인 지갑 등의 정보는 사망 이후에도 가족이나 유족에게 있어 정서적, 재정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하지만 이런 자산은 **개인정보 보호법(Privacy Law)**과 정면으로 충돌할 여지를 안고 있다. 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개인의 정보가, 동시에 가족이나 상속인의 입장에서는 접근이 필요한 '유산'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충돌은 사망자의 프라이버시와 유족의 알 권리 또는 상속권 사이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망자의 이메일을 열람하고 싶은 유족은 해당 플랫폼에 정보 공개를 요청할 수 있지만, 플랫폼은 생전 사용자와 맺은 서비스 이용 약관을 근거로 거절할 수 있다. 국내 개인정보 보호법과 국제적인 서비스 약관은 대개 '개인의 사망 이후에도 정보는 보호받아야 한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상속자들은 사망자의 계정이나 자료에 접근하지 못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2. 국내법의 관점 – 개인정보 보호법과 사망자의 권리

대한민국의 개인정보 보호법은 기본적으로 살아 있는 개인의 정보를 보호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사망자의 개인정보 보호도 일부 포함하는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으며, 이는 디지털 유산과 관련된 다양한 이슈를 낳고 있다. 특히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는 정보주체를 ‘생존하는 자연인’으로 규정하고 있어, 사망자는 정보주체로 간주되지 않는다. 하지만 사망자의 정보가 유족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경우 등에는 예외적으로 보호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문제는 각 서비스 제공업체가 내부 정책 또는 약관을 통해 사망자의 정보를 보호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내 주요 포털은 사망자의 이메일 계정이나 클라우드 접근 요청에 대해 법원의 결정이 없으면 원칙적으로 접근을 허용하지 않는다. 즉, 법적으로는 보호대상이 아니지만, 실무적으로는 보호되고 있는 상황인 것이다. 이런 모순된 구조는 유족의 디지털 유산 확보를 더욱 어렵게 만들며, 때로는 법적 소송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또한, 2021년부터 적용된 개정 개인정보 보호법에서는 개인정보의 수집·이용 동의와 관련된 규제가 더 엄격해지면서, 사망자의 정보 역시 공개 가능성이 더욱 낮아졌다. 유족이 해당 정보를 열람하거나 활용하기 위해서는 별도의 법적 절차를 거쳐야 하며, 일반적인 상속과 달리 간단한 유언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로 인해 많은 유족이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3. 글로벌 플랫폼 정책 – 구글, 페이스북, 애플의 사례

국내법 외에도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해외 플랫폼들의 정책은 디지털 유산 관리에 중요한 영향을 끼친다. 특히 구글, 페이스북, 애플과 같은 글로벌 서비스는 개인정보 보호에 대해 강력한 내부 정책을 가지고 있으며, 사망자의 정보 공개에 매우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구글은 '비활성 계정 관리자(Inactive Account Manager)' 기능을 통해 생전 사용자가 사망 혹은 장기 미사용 상태에 접어들 경우 특정인에게 계정 접근 권한을 부여할 수 있도록 한다. 하지만 이 기능을 생전에 설정하지 않은 경우, 유족은 법적 문서, 신원 확인 서류, 사망 진단서 등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페이스북은 '추모 계정(Memorialized Account)' 기능을 통해 사망자의 계정을 보존하거나 삭제할 수 있게 하는데, 이 역시 생전에 사전 설정이 필요하다.

애플은 최근 ‘디지털 상속인(Digital Legacy)’ 기능을 도입해 사용자가 생전에 가족을 상속인으로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능이 활성화되지 않은 경우, 유족은 계정 접근을 위해 법원의 명령을 제출해야 한다. 이처럼 글로벌 플랫폼은 개인정보 보호에 있어 “사용자의 동의가 없는 정보는 공개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키고 있으며, 이는 유족이 디지털 자산을 상속받는 데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4. 유족의 접근권 vs 사망자의 프라이버시 – 윤리적 쟁점

디지털 유산과 개인정보 보호법 사이의 충돌은 단순히 법률적 문제를 넘어서 윤리적 고민을 동반한다. 유족이 사망자의 계정에 접근해야 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가족 사진을 찾기 위해, 중요한 금융 자산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또는 정리되지 않은 온라인 활동을 종료하기 위해서 등이다. 하지만 반대로 사망자의 생전 사생활은 존중되어야 하며, 그가 의도하지 않은 정보 노출은 인권 침해로 간주될 수 있다.

특히 민감한 정보가 담긴 이메일, 채팅 기록, SNS 비공개 콘텐츠 등은 유족에게 감정적으로 충격을 줄 수 있거나, 불필요한 오해를 낳을 수 있다. 이는 남겨진 이들에게 또 다른 고통이 될 수 있으며, 사망자의 명예나 대인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 그렇기에 사망자의 의사 없이 유족이 모든 정보를 열람하는 것은 윤리적 회색지대에 해당한다.

이러한 윤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은 '디지털 유산 생전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생전에 계정별 처리 방침을 설정하고, 특정 자산은 누구에게 물려줄지 명시해두는 것이 사후 혼란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이는 단순히 법적 보호를 넘어서, 남겨진 이들에 대한 마지막 배려이자 책임이 될 수 있다.


5. 제도 개선과 실천 방안 – 개인과 사회가 함께 준비해야 할 것들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개인의 사전 준비와 함께 제도적 보완이 병행되어야 한다. 우선 개인 차원에서는 디지털 자산 목록을 정리하고, 생전 유언장이나 별도의 문서를 통해 유족에게 필요한 접근 정보를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암호화폐, 온라인 수익 계정, 클라우드 저장소 등은 보안이 강력하므로, 접근 방법을 정확히 안내하지 않으면 사실상 영구 봉인된다.

또한 정부와 법조계에서는 디지털 유산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사망자의 디지털 자산을 명확히 보호하거나 상속 대상으로 인정하는 구체적 법률이 미비하다. 따라서 디지털 자산을 유산으로 규정하고, 개인정보 보호법과 충돌되지 않는 선에서 유족의 접근 권리를 보장하는 입법이 시급하다. 일부 국가는 이미 ‘디지털 유산 법(Digital Legacy Act)’을 제정하여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해결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역시 해당 논의가 활성화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디지털 유산에 대해 인식하고 준비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다. 생전에 디지털 유언장을 작성하거나, SNS 계정에 추모 설정을 해두는 등의 작은 실천이 나중에 큰 차이를 만든다. 이제 우리는 디지털 세대에 걸맞은 유산 관리 방식으로 나아가야 하며, 그것이야말로 새로운 시대의 책임 있는 상속 문화라 할 수 있다.